영어 1도 모르던 평범한 주부, 미국에서 스스로 영어를 극복한 방법 | 글로벌 영상음악 감독 이원지님

이원지는 영어를 거의 못 하던 상태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후, 사람들에게 반복해달라고 요청하고 짧은 영상으로 표현을 따라 하며 영어를 극복했다. 고전음악 배경에서 영화음악으로 전환해 Melodique 앙상블을 설립했고, 현재 영화, 애니메이션, VR 콘서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곡하고 있다.
Chapters
정말 제대로 제가 아, 알아들었다 How are you? 이 정도였어요 나 여기 왜 왔나 못 알아들으면 어때? 한 번 더 물어보자 저는 그 문장을 다 외웠었어요 오, 이렇게 하는 거구나 아, 이거 빨리 써먹어야지 약간 이런 재미가 있어서 Go outside, meet
people, just say it 안녕하세요
저는 영상음악 작곡가이자 클래식 앙상블 단체 멜로디크의 코파운더 겸 아티스트 디렉터 이원지라고 합니다
남편이 미국 간다고 해서 같이 따라왔습니다 아니요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학교를 가지도 않았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집에 있었어요 정말 집에 있었고 정말 용기내서 도서관 한번 갔다 오고 그렇게 2년을 지냈어요 첫 2년은 저는 영어를 한국에서 다들 공부하듯이 테스트를 위한 영어만 했고 그래서 제가 미국에 처음 남편 따라서 왔을 때는 정말 제대로 제가 아 알아들었다 라고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은 How are you? 이 정도였어요 아니면 정말 Thank you? I'm sorry? 나머지 뭐 문장들은 어쩌다 단어 하나 캐치해서 어? 이 말인가? 이렇게 추측해서 알아듣는 정도였던 것 같아요 어쩔 땐 진짜 빨리 말하잖아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트레이너 조에 그로셀 쇼핑하러 가는데 뭐라고? 한국에서 배울 때는 그 속도를 안 배우잖아요 커스텀하지 않았어요 절대로 커스텀하지 않았고 주는 대로 먹었고 그 스타벅스에서 주문할 때 V하고 B하고 발음 차이를 제가 그때 몰랐었어요 바닐라 라떼라고 아무리 말을 했지만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이불킥하는 그런 순간은 정말 너무 많았어요
병원에 가야 할 때 힘들었어요? 아니면 뱅에 가야 할 때? 이불킥 하는 거?
네, 아직은 안 하고 싶어요
약을 받는 게 쉽지 않죠. 전문가들도 그렇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영어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겪었나요?
제가 아주 분명하게 기억하는 순간이 있는데,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어느 날 남편은 출근하고 저는 할 일이 없으니까 그냥 뭐 티비도 보다 지치고 제가 생각할 때 그때는 어쩌면 정말 우울증 초기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그리고 그때는 제가 작곡을 해야겠다라는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 나 여기 왜 왔나 왜냐면 영어를 못하니까 마주할 때마다 좌절의 순간이잖아요, 매번. 그러니까 오히려 더 아, 나 진짜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더 깊어졌던 때인 것 같아요. 근데 그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제가 그때 당시에 30대 초반이었나? 그랬는데 제가 10년 후에 지금의 나를 봤을 때 진짜 후회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이 정말 갑자기 번쩍 들었어요. 뭐라도 해야겠다. 좀 창피당해도 해봐야겠다. 후회하기 싫다. 그때부터 좀 변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공부를 하진 않았어요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까는 거를 연습한 것 같아요 못 알아들었으면 옛날에는 좀 알아들은 척 했는데 뭐라고? 라고 한 번 더 물어보는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게 첫 스텝이었던 것 같아요 못 알아 들으면 어때? 한 번 더 물어보자 근데 정말 신기한 건 한 번 더 물어보면 사람들이 다 되게 착하고 좋아요 다들 제가 못 알아 듣는 걸 아니까 한 번 더 천천히 얘기해 주거나 쉽게 얘기해 주거든요 그러면은 아, 그땐 또 알아들어요.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은 이제 더 용기를 내게 되는 거죠.
가랑비에
오쩌듯이? 가랑비에 오쩌. 저는 그렇게 공부를 하는 타입이 아니에요 노력은 해봤어요 책상에 앉아서 어떻게든 영어 공부를 해보려고 했지만 그게 저한테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알았고 예를 들어서 누가 I'm sorry 라고 했을 때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한국말은 아 아닙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지만 그게 영어로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몰랐었어요 어느 날 어떤 사람이 I'm sorry라고 했을 때 어떤 다른 사람이 No problem이라고 하는 걸 들은 거예요 제가 아 그때 No problem이라고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진짜 one by one 이렇게 하나씩 배워갔던 게 많았던 것 같아요 정말 켈리쌤 유튜브처럼 클립 하나 보고 오 이거 되게 재밌는 표현이다 어떤 상황일지 혼자 시뮬레이션 조금 해보고 이거 한번 나중에 써먹어 봐야지 저는 책으로 공부하거나 그러진 정말 않았어요.
저는
클래식을 전공했는데 가사가 없는 클래식 음악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든지에 대해서 궁금함이 많았어요. 그래서 나 영상음악으로 전공을 바꾸고 싶다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 생각해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학교를 들어가게 됐고 사실 코비드 때 졸업을 하게 돼서 되게 힘들었어요 그랬는데 학교 때 만났던 친구들이랑 코워크를 하면서 그리고 저 프로젝트 헌팅을 엄청 하면서 조금씩 롤링을 한 거죠. 우리의 콘서트. 그래서 롯데시네마 디스크에 가시면, 아마 다음 주에 발매될 것 같아요. 와우. 아마. 네,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네, 그렇죠. 그때는 정말 답답하다고 느낀 것 같아요. 학교 가서 내가 음악을 만들어왔는데 내 의도가 뭐였는지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말로 설명해야 되니까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래서 저는 뭘 봤냐면 작곡가들이 인터뷰한 영상을 아티클로 써놓은 글들이 좀 있어요. 저는 그 문장을 다 외웠었어요. 그 처음부터 끝까지를 뭐 몇 날, 며칠이 걸렸지만 외워가지고 인풋을 저한테 넣었죠. 그게 공부 같지 않다고 생각한 건 재미있어서였어요 평소에 이거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되는 거지? 하는데 거기 딱 이렇게 있으면 오!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거 빨리 써먹어야지 약간 이런 재미가 있어서 공부라고는 굳이 생각 안 한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고 공부하는 것에 대한 압박을 받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재미있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할 때는 한국에서 정교 교육을 받으신 분들은 이미 많은 걸 알고 있다 제가 영어를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언제냐면 제가 할 말을 정확히 모를 때에요 내 생각이 정리가 안 됐을 때 그러면 한국말도 못하고 영어도 못한단 말이에요? 말하고자 하는 게 클리어하면 정말 쉬운 영어로도 표현할 수 있는 건데 말씀하신 대로 그게 공부가 되면 너무 힘든 것 같고 차라리 어떤 사안에 대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짧게 표현하는 습관을 들이면 그것도 영어로 쉽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첫 회의를 했을 때 기억이 나요. 디렉터와 함께. 디렙터는 외국인이고, 저희는 그냥 이메일으로 소통을 해요. 디렛터는 제가 브로큰 영어를 사용했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즈음 회의를 직전, 제가 도망가고 싶었어요. 왜냐면 제가 모든 약점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정말 긴장되네요. 저는 언어를 배우는 큰 부분 중 하나가 위협을 가하는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자기 자신과의 격렬이 더 중요해요. 언어 자체보다는. 여기 문화적인 것들은 어땠어요? 여기에서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전국적으로 저는 여기에서 더 좋은 경험을 얻었습니다. 여기에서 살기 때문일 것 같아요. 여러분은 다른 나라에서, 다른 문화에서 오셨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오픈마인드가 되었죠. 그리고 베이애리아에 살면서 가장 좋아하는 점은 엄마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모두가 너무 긍정적이에요. 픽업 시간이 돼서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가야 되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플렉서블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줘서 편하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제가 학교 다녔을 때 한 사운드 디자이너가 강연을 한 시간이 있었는데 그분이 주라식파크의 사운드 디자인이었어요. 어떤 사람이 질문을 했어요. 그러니까 그분이 나는 워크 라이프 밸런스 없다. 아들이 봤을 때 자랑스러운 엄마이고 싶다. 그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아들이 쥬라시 파크가 나오고 나서 우리 엄마가 이 영화 이랬어 를 엄청 얘기하고 다녔다는 거예요. 그 순간이 내가 계속 워킹맘으로 살게 한다 그게 저한테 너무너무 임팩트가 있었고 나도 우리 아들 레이 봤을 때 나중에 나중에 언젠가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작곡가 되고 싶다 그런 꿈이 있습니다
Q. 어떻게 자신을 공유하고 작업을 발전시켰어요?
일단은 제 개인 앨범을 냈던 게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나는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야 라고 저 스스로도 정의할 수 있었고 세상에도 보일 수 있어서 그 음악을 듣고 저한테 작업 같이 하자고 했던 프로젝트들이 몇 개 있었고 근데 무엇보다도 저는 기회가 없으면 만들어라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게 제가 멜로디컬하고 클래식 앙상버 팀을 작년에 시작했는데 연주자들이 너무 연주 기회가 없는데 기다리지만 말고 그냥 우리가 연주 기회를 만들자 이렇게 한 거였거든요. 그런 식으로 저는 오히려 이제는 기다리는 것보다는 기회를 더 만들자. 그래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한테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자라고 약간 쉬프트를 하면서 저를 알리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
사람하고만 일할 수 있었던 것에서 지금은 정말 영어만 사용하면 더 많은 사람들, 전세계에 더 많은 사람들이랑 일할 수 있으니까 기회가 되었고 Still burden. I would say like frenemy? Friend and enemy at the same time, frenemy. I love that. That's the perfect
way to think about it. 10년 전 자신에게 말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혹은 자신이 그때부터 어떤 조언을 주었는지요?
밖에 나가서 사람들 만나면 그냥 말해요. 그리고 불편함에 익숙해져요. 그리고 얼굴이 두꺼워요.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과 관련될 수 있어요. 특히 처음에는 정말 불안해요. 너무 무서워요. 모든 것이 새로운 것, 문화가 새로운 것, 도시가 새로운 것, 언어는 다르지만, 때때로 밖에 나가면 첫번째 걸음을 걸으면 큰 차이가 나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나요?
앞으로도 계속 여러 매체에 영화나 애니메이션이나 VR 콘서트나 당연히 영상 음악을 하겠지만 좀 더 제 색깔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개인 음악 작업을 많이 하고 싶고 많이 낼 거니까 스포티파이든 애플 뮤직이든 제 이름을 검색해보시면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저와 대화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정말 놀라워요. 여기 살고 계신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정말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안녕!










